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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년 전, 아버지가 아들을 죽인 사건입니다. 왕이 세자를 죽인 사건입니다. 조선왕조 500년뿐만 아니라, 세계 역사를 통틀어 보더라도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희대의 비극적 스캔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사도세자는 누구인가?
주인공 사도는 본명이 '이선'이고, 영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납니다. 첫째 아들은 '효장세자'라고 합니다. 10살 되는 해에, 먼저 세상을 떠납니다. 영조가 마흔한 살에 늦둥이로 낳은 자식이 바로 '이선' 사도입니다. 늦둥이라 예쁜 것도 있지만, 얼마나 사랑을 많이 받았겠습니까.
2. 사도세자와 영조와의 갈등
그런데 이 아이가 자라나면서 부모의 기대와는 다른 쪽으로 소질이 발달하게 됩니다. 덩치가 커지고, 힘이 엄청나게 세져서 무술에 심취하게 됩니다. 또 영조는 문치주의를 갈망하는 군주였기 때문에 여기서 부모와 반목이 많이 생기게 됩니다. 결정적으로 아버지와 틀어지게 된 것은 왕의 업무를 대신 맡아보는 '대리청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대리 청정했던 14년 동안 완전히 틀어지게 됩니다.
3. 사도세자의 정신병
아버지의 꾸지람으로 청심환을 먹지 않고선 아버지를 만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며, 나중에는 정신병에 오게 되는데 의관을 정제하면 아버지를 만나러 가야 되니까 옷을 입으면 안 된다는 트라우마가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의대증'이라는 병에 걸리게 됩니다. 옷을 입을 때 옷이 살갗에 닿기라도 하면 칼을 꺼내서 옷 입히는 궁녀를 해치고, 쳐다본다고 내관을 해치고, 걷잡을 수 없는 지경까지 사태가 이르게 됩니다.
4. '임오화변'(1762년 7월 4일) - 사도세자의 죽음
결국, 영조는 대리청정 중인 황세자를 폐위하고 뒤주에 가두어 죽이게 된다. '임오화변'은 영조와 사도세자의 성격적 갈등, 신임 의리를 둘러싼 노·소론 당론의 대결 구도, 세자를 둘러싸고 궁중 세력과 연계된 당파 간 갈등 등 다양한 원인을 배경으로 합니다.
어떻게 아버지가 자식을 죽일 수 있을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입니다. 그렇다면 영조의 입장에서 이 사건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5. 영조는 누구인가?
영조의 아버지는 숙종이었습니다. 장희빈의 남편으로 유명한 분입니다. 장희빈이 후궁이었고, 또 다른 후궁이 었었으니 그 여자는 천민인 무수리 최 씨 숙빈입니다. 그 천민인 숙빈 최 씨의 아들이 연잉군입니다. 훗날 영조가 됩니다. 장희빈의 아들 '이윤'이는 숙종이 승하하시고 '윤'이 왕이 되었으니 이 사람이 '경종'입니다. 그런데 경종은 후사도 없고, 항상 몸도 아프고, 피곤해합니다. 그러다 보니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노론들은 항상 이것을 걱정을 하는데 비집권 야당이었던 노론들은 경종을 끝을 예측하고 연잉군에 붙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후사가 없으므로 세자가 아닌 세제 책봉을 진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몸이 아프니 왕의 업무를 대신하는 대리청정을 하도록 하게 됩니다. 이때 경종하고 소론의 눈밖에 나서 노론들은 죽임을 당하고 쫓겨나게 되면서 연잉군도 무서운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이러다가 경종에게 올린 '감'하고 '간장게장'을 먹고 배탈이 나서 경종이 죽게 됩니다. 그렇게 되어 왕이 된 사람이 바로 영조, 연잉군입니다.
6. 영조의 3가지 콤플렉스
첫째, 천민의 자식이라는 것. 두 번째, 자신의 배다른 형을 죽인 살인자라는 것. 그런데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영조 본인만 아는데 당시 모든 살마들, 경종 측근들은 다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영조 즉위 31년, 기사를 보면 이런 말이 나오게 됩니다. '그 생감과 간장게장 내가 형님한테 올린 게 아니라고 이놈들아'라는 글을 쓰게 됩니다. 그 글은 '천의 소감'이라는 책인데 영조의 집권과 그 의리에 대해 서술한 책으로 특히 자신의 즉위에 대한 정당성을 대대적으로 알리고자 하는 책입니다. 세 번째는, 노론이 만든 임금이라는 것입니다.
7. 영조의 살기 위한 노력
왕이 되고 보니, 노론이 자기를 허수아비 세우려고 하고 꼭두각시 세우려고 하니까 영조는 이 위기를 헤처 나가기 위해서 믿을 건 자신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상항 자기 관리를 열심히 하기 시작합니다. 이러면서 성격이 예민해지고, 까칠해지고, 깐깐해지게 되었습니다. 삶에 끼니를 거르는 법이 없었으며, 채식 위주로 소식으로 꼭꼭 씹어 먹었습니다. 또한 손에서 책을 놓는 법이 없었습니다. 하루에 15시간 이상 되는 살인적인 정무를 딱딱한 바닥에서 허리 펴고 앉아서 보았습니다.
8. 최연소 세자 책봉과 비극의 시작
이런 영조에게 41살에 낳은 자식 사도세자'이선'이 태어나게 됩니다. 이 늦둥이가 너무나 예뻐 태어나자마자 세자로 책봉을 하게 됩니다. '세자'라는 것은 어느 정도 성장한 다음에 자질이 있다 싶을 때 책봉하게 되는데 그냥 젖먹이 아이를 세자로 책봉한 것입니다.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어린아이는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면서 품속에서 자라야 하는데 세자로 책봉되니 동궁으로 옮기게 됩니다. 그러면서 아버지와 어머니와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군가 세자를 살피는 보노가 있어야 하는데 엉뚱하게도 영조는 자기가 죽인 것이라고 살마들이 믿고 있는 경종의 궁녀들을 사도세자의 보모로 앉혀놓은 것입니다. 이 보모들이 아버지와 자식을 이간질시키고, 또 무술을 가르치게 됩니다. 사도세자의 부인이었던 혜경궁 홍 씨의 기록 '한중록'을 보면 '동궁전에 보낸 것이(세자를 일찍 책봉한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고, 이것이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를 단절의 시작이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보통 하루에 3번씩 찾아와야 하는데 인사도 오지 않고, 어쩔 때는 6개월도 안 오고, 나중에는 1년 동안 찾아오지 않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대화가 중단되고, 불통은 의심을 낳고 오해를 낳게 됩니다. 영조는 세자가 음주가무에 취해 내관을 죽이고, 궁녀를 죽였는데 죽인 사람이 100명이 넘는다는 소문이 돌게 됩니다. 영조는 바로 자식을 죽인 것이 아닙니다. 불러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식과 진솔한 대화를 합니다. 그러면서 화해를 하였는데, 그것도 잠시일 뿐 4년 동안 대화 단절 불통의 시기가 찾아오게 되고, 사도세자의 화증은 점점 더 깊어져서 나중에는 칼을 들고 아버지를 해치우고 싶다는 말을 내뱉게 됩니다. 이 사실을 영조는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자기 아내 영빈 이 씨가 찾아와서 울면서 말을 듣게 됩니다. 양력 7월 4일 아침 7시에 시작해서 저녁 7시까지 무더운 여름 하루 종일 실랑이를 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자 결국 작은 뒤주에 가두고 8일 뒤에 주검으로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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