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반응형

'밀정'은 3·1 운동 직후인 1920년대를 배경으로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독립투사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입니다. 실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합조약 반포 과 그 후 

우리는 1910년에 일본 제국주의에게 나라를 빼앗기게 됩니다. 그리고 10년이 흐른 어느 날, 기득권 세력이 팔아버린 나라를 되찾겠다고 우리 국민들이 한 목소리로 외치게 됩니다. 이것을 3·1 운동이라고 합니다. 3·1 운동으로 자신감을 가진 우리 민족은 여러 가지 방략의 독립운동을 구상하게 됩니다. 강대국의 도움을 받아서 독립을 이룰 수 있다는 외교 독립론과 교육과 산업의 발전을 통해서 실력을 양성해서 독립하자는 실력양성론 등 다양한 방략들이 있었는데 이 모든 것들을 헛된 꿈이라고 비판하고 오직 민족의 직접적인 혁명과 수단, 그리고 폭력 등으로써만이 독립을 쟁취할 수 있다고 부르짖는 자들이 무장 투쟁론이라고 부릅니다. 

 

2. 무장 투쟁론 - 의열단

무장 투쟁론의 중심에 섰던 단체는 의로운 일을 열렬히 추진하는 단체, 바로 의열단이었습니다. 의열단은 3·1 운동 직후에 독립군 양성의 중심 신흥 무관학교의 졸업생 13명이 주축이 돼서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단장은 김원봉이었고, 그리고 훗날 신채호 선생께서 활동 지침을, 그리고 김구 선생께서 고문을 맡아줄 정도로 민족주의계·무정부주의계·사회주의계·심지어는 여자 단원에 남녀노소를 넘어서 외국인들까지 함께 활동할 정도로 사상과 이념을 초월한 그리고 국적을 초월한 의거 단체입니다. 

 

3. 의열단의 특징과 활동

이들은 스파이중에 스파이였기 때문에 다양한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영화에서도 단장 김원봉을 정채산으로, 단원 김시현을 김우진으로 김상옥 의사를 김장옥으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의열단의 첫 번째 활동은 1920년 9월 14일 박재혁의 부산 경찰서 투탄 의거입니다. 그리고 1921년 9월 12일 김익상의 조선총독부 투탄 의거가 계속 이어지게 되고,  그리고 1923년 1월 12일 김상옥 의사의 종로경찰서 폭파 사건에서 그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당시 종로경찰서는 많은 우리 독립투사들을 체포하고 무참히 고문했던 적의 컨트롤 타워였는데 그곳에 폭탄을 투척함으로써 적에게 공포감과 좌절감을 동시에 안겨준 분이 김상옥 의사였습니다. 그분은 의거 직후에 오늘날 후암동 지역에 몸을 은신하고 있었는데 당시 1월이었던 겨울, 일본 군경이 들이닥쳤는데 그 추운 눈밭을 급히 맨발로 뛰쳐나와서 남산을 뛰어넘어 왕십리를 거쳐서 동대문 쪽으로 달리게 됩니다. 지붕에서 지붕을 타고 넘으면서 쌍권총 2자루로 적들과 맹렬한 전투를 벌이게 되고, 그 전투 과정에서 동상에 얼어버린 엄지발가락 하나를 일게 됩니다. 결국 마지막 한 발이 남은 걸 직감한 김 의사께서는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됩니다. 그가 자결한 이후에 그의 몸에 나 있는 총구멍이 무려 열한 개나 됐다고 하니 마치 무협지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신출귀몰했던 그의 거사는 훗날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곤 했습니다. 

 

4. 영화 '밀정'의 모티브가 된 '황옥 폭탄 사건'

당시 의열단은 국내에서 포탄을 제조할 수 없어서 당시 국제도시였던 상하이에서 포탄을 제조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우리의 임시 정부도 있었고, 그리고 여러 나라 사람들의 조계지가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일본의 감시망을 피하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김상옥 의사의 배후인 의열단의 정보를 캐고, 포탄을 제조하는 시설의 정보까지 알아내기 위해서 조선인 출신 경찰을 중국에 잠입시키게 되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황옥 폭탄 사건'입니다. 황옥이라는 살마은 누구일까요? 평범한 조선인으로 태어나서 일본의 경찰이 됩니다. 독립군들을 많이 체포하게 되고, 그 공을 인정받아서 오늘날로 따지면 5급 공문원에 해당하는 경부 자리까지 오르게 됩니다. 그런데 황옥이라는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의열단의 정보를 캐내 오기는커녕 의열단 단원이었던 김시현과 함께 상해에서 제조된 다량의 폭탄을 기차에 실어 국내로 가지고 들어오는데 도움을 주게 됩니다. 이 실제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만들어진 영화가 바로 '밀정'입니다. 황옥 경부는 왜 이런 행동을 했던 것일까요? 이 사람은 일본이 보낸 밀정이 아니라, 우리 조선 독립을 도와준 독립운동가였을까요? 이런 예는 또 하나가 있습니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서 3·1 운동이 벌어지기 직전이었습니다. 당시 국민들에게 나눠 줄 '기미독립선언서'를 '보성사'라는 인쇄공장에서 인쇄를 하고 있었는데 야심한 시간에 일본 경찰이 들이닥친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다름 아닌 조선인 출신의 신철(본명 신승희)입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낯빛이 흙빛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간곡하게 그 조선인 경찰에게 한 번만 눔 감아 달라고 부탁을 했고, 그 당시 5천 원(지금으로 따지면 1억 5천만원) 거금을 그에게 건네게 되는데 신철은 그 돈을 받지 않고 훌쩍 만주로 떠나게 됩니다. 3·1 운동은 성공적으로 치러지게 되고, 훗날 신철의 배신을 알게 된 일본 경찰은 그를 체포하게 되고, 신철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됩니다. 조선과 일본! 그 어느 쪽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그 그림자들의 모습과 혁혁한 전과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억하지 못했던 의열단 단원들의 이야기를 이 영화를 통해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반응형